참치캔 vs 오도로: 한 생선의 두 운명, 무엇이 갈랐을까?
우리 집 찬장을 지키는 참치캔 한 캔의 가격은 약 2,000원. 그런데 백화점 식품관의 최고급 참다랑어 뱃살(오도로) 한 점은 수만 원을 호가합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새해 첫 경매에서 참치 한 마리가 수십억 원에 낙찰되기도 합니다.
같은 '참치'인데, 왜 이렇게 운명이 극단적으로 갈렸을까요? 이 질문의 답은 인류의 기술, 전쟁, 그리고 욕망의 역사 속에 숨어있습니다.

평범한 참치캔, 화려한 마블링의 오도로 초밥
전쟁이 낳은 발명품, '참치 통조림'의 탄생
참치가 전 세계인의 식탁에 오르기 시작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덕분이었습니다.
19세기 초, 유럽을 정복하던 나폴레옹은 군대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던 식량 보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액의 상금을 내걸었습니다. 이때 제빵업자였던 니콜라 아페르가 음식을 병에 넣고 밀봉 가열해 장기간 보존하는 '병조림' 기술을 발명했죠. 이것이 오늘날 통조림의 시작입니다.
이후 1903년 미국, 정어리가 잡히지 않자 골칫덩이였던 참치를 통조림으로 만들었는데, 의외의 대박이 터집니다. 닭고기처럼 담백한 맛에 '바다의 닭고기(Chicken of the Sea)'라는 별명이 붙으며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습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저렴하고 영양가 높은 군용 식량으로 대량 보급되었고, 전쟁 후에는 자연스럽게 서민들의 식탁을 책임지는 식재료로 자리 잡았습니다.
K-참치 신화: 두 거인, 동원과 사조
대한민국 참치 역사는 두 라이벌, 동원과 사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1. 바다를 아는 '캡틴 킴', 동원 김재철
원양어선 선장 출신인 '캡틴 킴' 김재철 회장은 현장에서 답을 찾는 리더였습니다. 그는 국민소득이 오르면 참치 소비가 늘어날 것을 예측하고, 수출만 하던 참치를 국내 시장에 '동원참치' 캔으로 출시하는 승부수를 띄웁니다.
초기에는 생소한 음식이라 외면받았지만, '참치 김치찌개'라는 신의 한 수 레시피를 전파하며 참치캔을 한국인의 밥상에 완벽하게 안착시켰습니다.
2. M&A의 귀재, '전략가' 사조 주진우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엘리트였던 주진우 회장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기업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바다에 대한 경험은 부족했지만, 탁월한 경영 감각으로 위기를 돌파했습니다.
그의 핵심 전략은 바로 인수합병(M&A). 사조해표, 오양수산 등 위기에 빠진 식품 기업들을 차례로 인수하며 사조그룹을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워냈습니다.
고양이도 외면하던 뱃살, '오도로'의 반전
지금은 미식의 상징인 참치 뱃살 '토로(トロ)'. 하지만 100년 전만 해도 기름이 많아 쉽게 상한다며 '고양이도 거들떠보지 않는 부위(네코마타기)'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 천덕꾸러기의 운명을 바꾼 것은 바로 '냉동 기술'이었습니다.
원양어선에서 참치를 잡자마자 영하 60도로 급속 냉동시키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부패의 원인이었던 지방이 오히려 신선함과 풍미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죠. 전국적인 콜드체인(저온 유통망)이 구축되면서, 과거의 단점은 '입에서 살살 녹는 환상적인 맛'이라는 최고의 장점으로 변신했습니다. 기술이 버려지던 부위를 최고의 사치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참치의 미래: '잡는 어업'에서 '기르는 어업'으로
폭발적인 인기는 자원 고갈이라는 그림자를 낳았습니다. 무분별한 남획으로 참다랑어는 멸종 위기에 처했죠. 인류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해답은 '완전양식' 기술이었습니다.
완전양식이란 인공수정으로 얻은 치어를 길러 다시 알을 낳게 하는, 자연산 치어 없이 100% 양식만으로 대를 잇는 기술입니다. 일본 긴키대학 연구소는 32년간의 끈질긴 연구 끝에 2002년, 세계 최초로 이 꿈의 기술을 성공시켰습니다.
결론: 기술과 비전이 만든 참치의 역사
- 통조림 기술은 참치를 전쟁터와 서민의 식탁으로 이끌었습니다.
- 냉동 기술은 버려지던 뱃살을 미식의 정점으로 만들었습니다.
- 두 창업가의 비전은 대한민국을 세계적인 참치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 양식 기술은 참치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참치의 두 운명을 가른 것은 기술의 발전과 시장을 읽는 리더의 혜안이었습니다. 이제 참치캔을 따거나 오도로 한 점을 맛볼 때, 그 안에 담긴 거대한 역사를 함께 음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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